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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를 넘어 30일 나홀로 여행기 9] : 기차에서의 사람들
    해외 여행/러시아&인접국가 2019. 5. 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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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냐 아저씨는 화물 운송업을 하는 50대 가장이었는데, 두 딸을 아버지였다.
    유치원생인 딸과 유치원생인 딸이었는데 유치원생 딸이 너무나도 귀여우신지 아빠 미소가 한가 득이었다.
    우리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했다. 
    그냥 분위기로 한 대화였다. 그래도 대화였다.

    생각보다 번역기는 정확하지 않았다.
    많이 쓰는 문장 같은 경우는 쓸만했으나,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무 쓸모였다.
    그래서 단어 정도로만 번역기를 쓰고 나머지는 거의 감으로 대화했다.

    화물 운송업 때문에 기차를 탄다는 아저씨는 동료?들과 함께 기차를 탔는데
    다 다른 칸에 있는 것 같았다. 
    제냐 아저씨가 나이가 제일 많아 보였는데 상상이었던 걸까?
    동료라고 하니 괜히 대화가 심각해 보였다. 
    대화 내용이 '내리면 한잔하실래요?' 이런 내용일지 몰라도 난 모르니까!

    외국인인 나야 러시아에 대한 환상,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로망으로 기차에 올랐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차는 그저 운송 수단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제냐 아저씨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타는 게 6번째라고 했다.
    조금 의외였다. 뭔가 프로의 향기가 나서 더 많이 타봤을 줄 알았다.
    빠르게 침구를 정리하셨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보니 차장님이 와서 표를 돌려줬다.
    제냐 아저씨가 한 시간 뒤에 내린다고 했다. 

    원래 손 글씨 같은 걸로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이름을 써주려고 했는데
    내가 봐도 별로라 접었다.
    뭔가 남기고 싶어서 데세랄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제냐 아저씨가 오케이를 했고 어두운 기차 내에서 열심히 찍었다.
    사진을 보내주려고 왓츠앱도 교환했다.
    그런데 비극적으로 사진은 전해지지 않았다.....
    (투 비 컨티뉴ㅠㅠ)


    역에 도착하고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제냐 아저씨는 내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역인 것 같아 눈인사를 하고 동행 언니와 만났다.
    전 역에서부터 다음 역에 만나자! 하고 있었다.

    30분을 정차하는 역이고 큰 역이어서 사람들이 아주 많이 내리고 탔다.
    Belogorsk 벨로고그스크 라는 역이었다.

     


    눈이 정말이지 펑펑 내리고 있었다.
    러시아에 온 지 아직 닷새였는데, 이제까지 제대로 된 눈을 못 본 터라 반가웠다.
    지금까지는 내려봤자 싸락눈이었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날의 개처럼 신 나게 사진 찍고 걸어 다녔더니 몸이 축축해져서 들어갔다.

    짧은 기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제냐 아저씨는 없었다.
    내리는 게 맞았던 것이다. ㅠㅠ
    제대로 인사를 못했던 터라 마음이 안 좋았다.

    그 제냐 아저씨의 자리를 3~40대 큰 체격의 남자분이 정리하고 있었다.
    덩치가 아주 크신 분이었는데 그때 까지 본 사람 중에 가장 컸다.
    동행 언니와 '무서워 보인다'는 속삭이며 짧게 인사를 나누고 객차 탐방에 나섰다.

    사실 나도 내 객차를 온수통 방향으로는 갔어도 뒤쪽으로 가본 적이 없었는데,
    제일 마지막 자리에 고양이가 타고 있었다!
    기차에 타면 여러 러시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말을 배워야겠다!는 원대한 생각이 있었지만
    러시아 기차에서 만난 그 누구와도 원활한 대화가 되지 않아 살짝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서서 '귀였다!!!'를 속으로 외치고 있는데 동행 언니가 자연스레 고양이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20대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러시아 기차에서 처음으로 만난 영어 하는 사람이었다.

    고양이 이름은 샤샤였는데 어찌나 얌전한지 (피곤하거나 귀찮았을 수도;;)
    낯선 사람이 다가와도 경계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사실 샤샤라는 이름은 한 번 듣고 외우고 집사 이름은 여러 번 들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사이언스...
    집사님 이름이 너무 어렵기도 했다.
    샤샤를 만져도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샤샤를 만졌다.
    샤샤는 우리가 만져도 누워 있을 따름이었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러시아 기차 내 최고의 힐링이었다.

    그렇게 기쁘게 동행 언니와 헤어지고 내 자리로 돌아왔더니 저녁 시간이었다.
    앞의 아저씨는 어느새 자리를 세팅하고 저녁을 꺼내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소시지와 치즈와 오이가 나왔다.
    나는 그냥 빵 한 쪽 먹으며 흘깃흘깃 흥미로운 음식들을 구경했다.

    짧게 자기소개를 하며 식사를 했는데,
    맥가이버 칼로 소세지와 치즈를 잘라 빵과 같이 먹었는데 아주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마무리로 오이 하나와 오뚜기 마요네즈!

    내가 한국인이라는 말에 마요네즈를 보여주며
    '오뚜기~ 오뚜기' 하며 웃었다.
    그래도 이 분은 빨리 미소를 보여 주셨다.
    첫인상은 조금 무서웠지만 (이것 역시 나의 편견과 쫄보 정신 때문이다! 그들에겐 죄가 없어) 
    인상은 둥글둥글하니 편안한 분이셨다.
    비록 덩치는 곰 같이 거대하시지만 말이다!

    그렇게 식사를 끝마치고 있었는데 
    차장 아주머니가 바구니에 뭘 넣어 뭐라 뭐라 하고 걸어가셨다.
    뭐지? 싶었는데 곰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이라고 말을 해줬고 
    마침 차장님이 날 보고 아이스크림을 내미셔서 자연스레 아이스크림을 사게 됐다.

     

    러시아에서 흔히 보는 형태의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맛있었다!
    한국 돈으로 2천 원 정도였는데 기차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라 조금 각별하게 느껴졌다.


    곰 아저씨는 나와의 대화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모두가 나와 대화할 필요는 없으니 나도 일부러 더 말을 붙이거나 하진 않았다.

    곰 아저씨는 복도 쪽 중년 부부와 금방 친해졌는데 굉장히 말이 많았다.
    뭔가 대화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곰 아저씨가 중년 부부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느낌이 강했다.

    흥미로운 건 우리나라라면 연장자와 대화 할 때 적어도 앉아서 대화했을 텐데
    곰 아저씨는 자연스레 옆으로 누워 로마 황제처럼 대화를 나눴다.
    문화 차이가 상당하구나 싶었다.

    대체적으로 곰 아저씨가 말을 하고 부부 중 아주머니가 말을 듣고 아저씨는 단답형이었는데
    대화가 상당히 길고 잦아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궁금했다.
    하지만 굳이 내가 그 흐름을 깨고 싶진 않아서 조용히 이북리더기로 책을 봤다.

    어느새 또 밤이 되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셈이었다.
    동행 언니 객차의 화장실은 그렇게까지 나쁜 편은 아닌 걸 알게 되었다.
    그 때 현지인의 정보와 오픈 카톡 방의 정보로 객차의 좋고 나쁨은 무작위인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때 꼭 우리 칸의 화장실만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제일 가까운 2등석의 화장실로 찾아갔다.
    기차의 특수성으로 아주 편할 순 없겠지만, 우리 칸 화장실에서 씻고 볼일보다
    2등석 화장실로 가니(2등석 객차의 질도 제각각이다.) 감동이었다.
    화장실 하나 바뀌었다고 좋아할 수 있는 것도 러시아 기차의 매력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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