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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를 넘어 30일 나홀로 여행기 11] : 드디어 이르쿠츠크!
    해외 여행/러시아&인접국가 2019. 6. 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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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횡단 열차 네번째 날 001 하차 - 이르쿠츠크 도착
    여행 이레 째

     



    객차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 같은데, 
    내가 탄 객차는 비교적 나이대가 높았던 탓인지 아침이 이르게 시작되는 편이었다.

    분주하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8시가 되기 전 눈을 떠서 씻고 앉아 있었다.
    8시 반쯤에 큰 역에서 20분 넘게 정차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역에서는 기차에서 내리려는 사람들도 복도에 줄이 생기는데 
    이번 역은 그 줄이 보통이 아니라 긴장이 됐다.
    얼마나 많이 타려나!!

     


    드디어 '울란우데'역에 도착했다.
    정말 내리는 것도 한창이 걸렸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러시아로 들어오는 기차역이기도 해서 사람이 정말 많았다.
    한참 기다려서 내리니 들어오려는 사람들도 한 객차당 수십 명 이었다.

    사실 2박 3일 동안 전체적으로 기차가 한산하다는 느낌이었다.
    2층엔 거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이곳에선 다 차겠구나' 하는 감이 왔다.

    파스텔 파스텔 한 역사를 구경하고 객차 내로 들어와 보니 직감은 적중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소란스러움이 가득했고 채 자리에 앉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초중고 학생들로 보였는데 다 같은 단체에서 온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앉아 책도 읽고 풍경도 구경했던 복도 쪽도 순식간에 다 찼고
    거의 모든 2층도 다 찼다.

    그리고 반전이 있었다.
    사실 내 쪽 복도쪽 자리라고 생각했던 중년 부부는 사실 그곳이 자리가 아니었다.
    아주머니가 복도쪽 2층이었고, 아저씨가 내 자리 2층이었다.
    반전 심한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누가 뭐래도 그분들의 자리였는데....

    1층과 2층 자리 가격이 같을 때도 있지만 
    내가 탄 열차는 2층이 확연히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신 것 같았다.
    열차가 출발하고서도 30분은 달리고 나서야 얼추 정리되었다.

    결국 복도 쪽 아저씨는 내 옆자리에 앉았고 아주머니만 복도쪽 자리에 앉아 계셨는데
    단체로 탔던 아이들은 무슨 경기에 나가는지 본인의 단체 티에 팀 명패를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복도쪽 1층 자리의 여자아이는 아주머니에게 나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2층이 차면서 한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한국에서는 1층 사람이 2층 사람과 낮에 자리를 공유하는 건 
    일종의 규칙이라고 들었지만 아니었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1층 사람들은 낮 시간에 2층 사람들과 자리를 공유하지 않았다.
    밥 시간이거나, 친해지거나, 원래 아는 사이거나 하는 경우에만 자리를 공유했다.
    그래서 열차 타는 시간에 정말 동면하듯 잠만 자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아 이런 이유라면 횡단 열차가 싫기도 하겠다' 불현듯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결국 복도 아저씨는 갈 곳을 잃고 헤메이며 나에게 조심스레 앉아도 되겠느냐 물어보셨다.
    너무 소심해지신 느낌에 최대한 편하게 앉으시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불편하셨는지, 아니면 미안하셨는지, 원래 예의인지 거의 끝에 앉아 조용히 휴대폰만 보셨다.

    슬라바 아저씨의 2층에도 그 단체 중 여자 아이 한 명이었는데 
    2층을 엄청난 자세로 올라갔다.

    횡단 열차의 2층이란 사실 올라가기가 굉장히 힘들다.
    복도 쪽 2층이라면 그나마 발 디딜 곳이 확실한데,
    안쪽이라면 의자와 식탁을 밟아야만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래서 노인분들은 거의 부축이 있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었다.
    카톡 오픈 방을 보니 키가 180인데도 2층 올라가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자 아이는 진짜 '휙 휙'하고 올라가는 것이다.
    그 순간 '얘네들 체조 아니면 무용한다!' 라고 확신을 하게 됐다.
    예사 움직임이 아니었다.

    슬라바 아저씨 2층 아이는 거의 잠잘 때 아니면 친구들 근처로 가서 놀았는데
    복도 쪽 1층 아이는 거의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기대 없이 말을 걸어봤는데 그때 까지 본 러시아 사람 중에 영어를 제일 잘했다.
    서양인이니 한 15살일까 생각했던 아이는 놀랍게도 18살이었는데 
    그 단체 중에 나이가 제일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침착함이 있었다.

    영어를 아주 잘하길래 너희 모두 다 그렇게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당당하게 아마 자기만 이렇게 잘할 거라고 말했다. 꿈이 통역가라는 것이다.
    꿈과 계획이 확고하기에 멋있다고 손뼉을 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책 없었나 싶다.;;

    그 단체는 역시 예상대로 댄스팀이었는데 이르쿠츠크 근처에서 
    열리는 댄스경연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거의 30명 정도라고 했는데 중국에 초청 기념 공연을 했던 적도 있다고 하니 실력이 꽤 출중한 팀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많이 탄 덕에 노랫소리도 들리고 꽤나 시끌시끌해졌다.

     

     


    아침을 먹고 살짝살짝 졸고 있었는데 슬라바 아저씨가 나를 깨웠다.
    바이칼 호수가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감탄을 내지르며 창문 앞에 얼굴을 갖다 댔다. 
    눈 덮인 바이칼은 눈 쌓인 들판 같기도 했다. 
    극히 일부만 보았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아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슬라바 아저씨는 영상을 다 보았기 때문인지 폰을 비교적 덜 만지고 있었던 터라 모처럼 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난 바이칼 호수를 보고 싶어 러시아로 왔고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면 알혼 섬에 갈거다.
    바이칼 호수와 알혼 섬이 너무너무 기대된다. 라고 손짓 발짓 아주 약간의 러시아와 번역기로 전했다.

    그러자 나에게 자기가 알혼섬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 여름의 알혼 섬으로 푸릇푸릇 싱그러운 느낌이 가득하였다. 

    그러며 나에게 너무 안타깝다는 듯이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대략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알혼 섬은 여름이 진짜야!!! 왜 지금 가는 거야ㅠㅠ 여름이 와야지!!! 알혼섬은 여름이 짱이란 말야!!'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러시아&바이칼의 콤보로 꽝꽝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에 대한 로망이 있지만
    이르쿠츠크 사람들에겐 알혼섬은 여름 최고의 휴양지인 것 같았다.
    나에게 여름의 알혼섬이 좋은지 시청각 자료와 해석할 수 없는 러시아어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얼어 붙은 바이칼이 더 보고 싶다구!라는 생각으로 여름에도 와 봐야겠다고 끄덕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는 느낌이 났다. 
    나도 따라서 정리를 했다.

    얼추 정리를 다 하니 차장님이 나에게 표를 돌려주며 '너 다음에 내려'라고 말하는 듯했다.
    드디어 3박 4일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첫 번째 대단원의 마지막이었다.
    처음에 받았던 리넨 세트를 차장님께 돌려 드리고, 컵도 돌려 드렸다.
    바리바리 꺼내 놓은 짐들을 정리하고 쓰레기도 버렸다.

    기차에서 내리는 건 정말 좋았지만 짧은 시간에도 정이 들었는지
    내리는 순간이 아쉽기도 했다.

    이르쿠츠크는 꽤 큰 도시였고 아직 내리려면 꽤 남았지만, 인터넷이 끊기지 않기 시작했다.
    동행 언니와 이제야 내린다며 키득거리며 카톡을 주고받았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기차에서 바라보며 슬라바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슬라바는 이르쿠츠크에서 사는 사람이었는데 이르쿠츠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기차 내에서 보조 베터리를 도둑맞은 터라 어디서 사야 하나 대형 마트를 눈으로 찾으며
    슬라바한테 저거 큰 쇼핑몰이야? 하고 물어보니 같잖다는 눈길로 
    '저건 여기서 큰 편도 아니야! 이르쿠츠크에는 큰 쇼핑몰 넘치고 넘쳐!'라며 대답해 줬다.
    안심되는 순간이었다.
    아직 갈 길이 한참이었는데 벌써 보조배터리 없이 살 순 없었다.

    그렇게 시내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릴 시간이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한 2일 하고도 23시간에 달하는 기차 생활에서 안녕이었다.
    왜인지 날 20살 정도로 봤던 중년 부부에게 인사하고 
    슬라바에게도 인사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엄청난 인파가 함께 내렸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다행히 동행 언니와 쉽게 만났다. 
    우리는 부푼 가슴으로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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