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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를 넘어 30일 나홀로 여행기 8] :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해외 여행/러시아&인접국가 2019. 5. 2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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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횡단 열차 001에서 두번째 날
    여행 네번째 날

     

    스스로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지만,
    오픈 되어 있는 기차에서 잠을 자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탄 블라디보스톡 발 모스크바행 001 열차는
    자정 이후로 새벽 6시 이전까지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멈추며 사람을 날랐다.
    결국 역에 설 때마다 선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피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아침을 먹으려 움직일 때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다들 움직이길래 늦게 일어난 줄 알았건만 8시가 조금 넘었다..

     

     

    https://timevoyage.tistory.com/94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시간 관리하기

    열차에서 언제 내리지? 지금 몇 시야? 러시아에는 9개의 시간대가 있습니다. 다행히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까지는 두번의 시간대 변화만 있지만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 까지는 무려 5번의 시간대를 겪어서 6..

    timevoyage.tistory.com

     


    어제 화장실의 충격인지 아침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제 꽤 멀어졌는지 인터넷도 거의 되지 않았다.
    씻지도 않고 횧단 열차의 친구, 이북리더기인 누글삼으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긴 싫었다.

    2층에 사람이 있으면 밥 먹는 시간엔 일어나야 예의이지만
    다행히 2층에 아직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복도 쪽에 중년 부부가 앉아 식사로 하고 있었다.
    계속 미적거리다 씻고 와서 인사를 건넸다.

    그나마 아주머니는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상대적으로) 
    금발의 아저씨는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때 까지는 아직 러시아인들이 처음엔 웃지 않는단 사실을 몰라 내 첫인상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인의 금발 비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더니 사실인 것 같았다.
    객차 내의 반 이상이 금발의 소유자였다.

     

    눈 없는 황량한 나무 행렬, 자작나무는 아니다.


    씻고 풍경을 구경하니 끝없는 자작나무의 행렬이었다.
    시작점이 블라디보스톡인 탓에,기차 탔을 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실감이 덜 났는데 
    자작나무 숲을 멍하니 보니 내가 진짜 러시아에 있구나 싶었다. 
    아쉽게도 눈은 별로 없었다. 3월이라 날이 풀린 걸까?

    그렇게 러시아의 실감과 함께 알레르기가 함께 찾아왔다.
    많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난 자작나무 알러지가 검사표상에서 최대치였는데
    한국에선 자작나무를 볼 일이 없어 의식하지 못한 터였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얼굴이 부었다 싶었는데 그 붓기가 점심 때까지 빠지지 않아 
    자작나무의 존재감과 알레르기의 존재감을 같이 깨달은 것이다.
    붓기가 빠지긴커녕 얼굴을 풍선 삼아 바람을 넣은 듯 땡땡해져만 갔다.

    큰 역에 도착할 때마다 집에 영상통화를 걸었는데
    그 때 마다 가족들이 부푼 내 얼굴을 보고 빵 터져 가족들의 수명을 늘릴 수 있었다.

    기차 내에서 시간을 의식하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삼등석의 경우 음식의 냄새가 객차 내를 가득 채우는 데다가 
    거의 온수통을 이용해서 식사를 해결하기 때문에 온수통을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알룐카(러시아 대표 초콜릿)을 먹어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지 싶어 시리얼과 우유 빵을 뜯었다. 
    뭔가 매콤한 한국 음식 냄새가 나면 식욕이 돋을 것 같은데 아무 데서도 맛있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영원한 1위 식량 도시락 라면! 맛은 여러가지다.




    러시아 사람들은 거의 4가지 중 하나다.

    1. 도시락 라면 (다른 라면도 좀 먹는다)
    2. 감자 퓨레
    3. 빵 x 치즈 x 소시지 x 오이(+절임류 + 과일)
    4. 집에서 만들어온 간단한 음식

    1~3번이 90% 이상이고 4번은 한 두 번 밖에 못 봤다.
    젊은 사람들은 1,2번이 90% 이상이고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3번 이상이 90%였다. 3번에 1~2번 콜라보 같은 느낌으로 밥을 때웠다!

    물론 여기에 식후 홍차와 커피는 필수다.
    나도 1,2,3으로 적절히 밥을 먹었다.

     


    식사를 끝마칠 때쯤 엄청 긴 터널을 빠져나왔는데
    빠져나오자마자 내가 생각하던 눈 덮인 러시아가 보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라는 구절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기차에서 지내다 보면 제일 기다리는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리는 순간이다.
    기차가 넓고 길다 한들 답답하지 않을 순 없다.
    게다가 기차 안에서는 금연이라 흡연가들에게는 내리는 순간을 아주 격하게 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차장님에서 이것저것 판다고 하지만 물품들은 물이나 라면 과자 음료수, 혹은 기념품 정도이기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챙겨 오지 않은 사람들은 기차역의 키오스크나 음식을 파는 상인들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나도 답답한 기차 안 때문에 수시로 다음 역은 어딘지 시간표를 보았다.

    기차는 실내 온도 24~28도를 유지하는 터라 굉장히 따듯하고 (혹은 덥고) 답답하고 건조하다. 


    친해진 앞자리 아저씨가 시시때때로 시간을 알려주었다.
    (앞자리 아저씨는 제냐라는 이름의 50대 러시아 분이신데 우리는 말 없이도 얼추 친해졌다.)

    역이 정차할 때 마다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기차가 그렇듯 1~3분 정도 서는 기차역이 있었고
    15분~45분까지도 멈추는 기차역이 있기 때문이다.
    30분 이상 멈추는 기차역에서는 물이나 각종 비품을 배급받는 것 같았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타고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15분 이상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바람을 쐬러 나간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오래 달리는 걸 고려하면 굉장히 정확하게 시간이 맞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몇십 분의 시간 차이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역이 오래 멈추는 역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제냐 아저씨는 친절히 나에게 내리라며 손짓을 해주었다.


    15분 이상 멈추는 역에는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나와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음식 판매 행위는 불법인 것 같았다.
    기차역에 경찰들이 많이 보이는 곳엔 그런 상인들이 눈빛으로 판촉을 했고
    그걸 알아듣지 못하면 못 사는 거였다.

    그래서 그런지 기차에 타면 훈제 오물을 사 먹으려고 했건만,
    오물 파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초반엔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사 먹을 생각이 없었고
    나중엔 역이 커지면서 경찰이 많아져 사는게 쉽지 않았다.


    정차역에서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동행 언니와 마주치는 건 쉬웠다. 
    다들 내리기 때문에 그 중에서 아는 얼굴을 자연스레 찾았다.

    그 중에 한국인을 찾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모스크바행 횡단 열차엔 많은 한국인이 타고 있었다.
    중년 아주머니 그룹으로 보이는 그룹과
    꺄꺄 재밌어. 보이는 20대 여자 그룹,
    유튜브 촬영을 하는 듯한 20대 남자 그룹 등
    다 어디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차역에서 보게 되었다. 
    묘하게 반가워 '오 한국인이다!'라며 쳐다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오래 정차 할수록 많이 내리고 
    짧게 정차 할 수록 적게 내려서 30분 정도 낮에 정차하면 우르르 내리게 되어 있었다.
    스스로 올라탄 기차지만 원할 때 내릴 수 없다는 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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