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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를 넘어 30일 나홀로 여행기 7] : 드디어 기차!
    해외 여행/러시아&인접국가 2019. 5. 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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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에서 눈인사를 하고 맡겨둔 배낭을 찾았다.
    전날 루스키행으로 옷이 더러워져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그냥 돈을 내고 세탁기를 돌렸다.

    아침에 널고 가서 마약 반야를 다녀오면 다 마를 거라 예상했는데
    건조대가 있는 베란다가 응달이었다.....
    겨울옷이 마르려면 한창이었다.
    고민 하다 드라이기로 살짝 말려보았는데 이렇게 말리다간 숙소에 민폐일 것 같아 그냥 포기하고 배낭에 넣었다. 
    안 그래도 무거운 가방이 축축해진 옷으로 더 무거워진 듯했다.


    택시비도 저렴하니 그냥 택시 탈까 하다가 혹시 몰라 러시아 지도 앱을 보니 
    딱 기차역 가는 길에 사고가 나 있었다.
    찾아보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걸어갔다.
    숙소에서 10분 거리였는데 더 멀게 느껴졌다.


    월요일 퇴근 하는 차들을 거슬러 오르며 기차역으로 가는 길이 낯설었다.
    뭔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혹은 종착점)이라고 하면 그 근처에만 가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느낌을 받으며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벅차오를 것 같은데 너무나도 도시였다.
    하긴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 법이었다.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은 문을 열자마자 보안검사가 있었다.
    짐 가득 들은 에코백에 매듭 다 채운 배낭, 손에 짐볼도 있어 잠시 당황했지만
    뒤로 계속 사람들이 오는 터라 지체할 시간 없이 파바박 짐들을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파파박 짐을 챙겼다. 다시 드는 게 훨씬 일이다.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은 구조가 특이했는데, 
    나중에 러시아 기차를 많이 타 본 뒤에도 여전히 특이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비해 대기실로 보이는 곳은 한산했고, 기차역 자체도 조용했다.

     

    https://timevoyage.tistory.com/88

     

    러시아 기차표 보는 방법(시베리아 횡단 열차)

    1. 열차 번호 : 001 기차 2. 출발 시간 : 3월 18일 19시 10분 출발 3. 객차 번호 : 15번 객차 4. 여권 번호 : M~~~~~~ (예매시 입력한 여권 번호 5. 이름 : 신분증과 같은 이름 (예매시 입력한 이름 6. 생년 월일..

    timevoyage.tistory.com


    러시아 철도청 앱이 있어서 굳이 발권하지 않아도 됐지만 쓸데없는
    표 하나로 몇 년의 추억을 되살리니까 발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긴 보안 체크가 한 번 더 있었다. 
    유일하게 보안 체크를 두 번 한 기차역이었다.
    그 바람에 또 주섬주섬 가방을 풀고 다시 정리하는 바람에 땀이 주르륵 나기 시작했다.
    추가 보안체크는 기차를 타는 플랫폼으로 가는 사람들만 더 하는 것 같았다.

    힘들게 발권을 하고 자판기에서 물을 뽑았다.
    마트에서 사면 더 싸겠지만, 택시를 안 타는 대신 물 무게를 줄이고 싶었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기차 탈 시간이 다가왔다.

     


    서둘러 플랫폼으로 나갔다. 
    블라디보스톡까지 왔는데 기차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다.
    15번 열차였는데 기차가 심하게 길었다. 
    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숫자가 연속되지 않는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덜 걷고 싶어 보이는 차장님께 다짜고짜 티켓을 보여 드렸다.
    그랬더니 손가락을 쭈욱! 손가락을 따라 열심히 걸었더니 13번 열차가 보였다.
    (차장님이 나와 계신 쪽 기차를 보면 작게 번호가 쓰여 있다, 그것이 차량 번호!)


    블라디보스톡이 발차 역이라 다른 역에서는 볼 수 없는 기차 내 풍경이 있다.
    1층 칸의 의자가 다 올라가 있고, 침구류는 착착 정리 되어 
    안 쪽 2층 의자 위에는 베개가 있고 복도 쪽 2층 의자 위에는 담요가 있다.
    다른 기차 역에서 타도 이런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지만 
    역시 아무도 타지 않은 기차를 탔을 때에만 볼 수 있기에 약간의 특별함이 있다. 
    정말 이제 길을 떠나는 느낌이 마구마구 들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온 터라 처음 아닌 척 자연스레 자리 밑 짐칸에 안 쓸 짐을 내리고 의자를 내렸다.
    그리고 할 일이 없어서 서둘러 밖으로 나가 인증사진을 찍었다. 
    출발하기 직전에 기차에 타보니 내 앞쪽에 중년의 러시아 남자분이 자리를 잡았다.
    짧음 금발에 무서워 보이는 표정이 전형적인(편견 섞인) 외모였다.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 쥐 죽은 듯 자리에 앉아 있었다.

    베게와 담요를 셋팅 할까 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길래 자연스러운 척 나도 안 했다.
    그렇게 기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하더니 내 마음도 덜컹거렸다.
    여행 전에 블로그와 카톡 오픈방, 카페 눈팅을 아주 많이 했는데,
    거기선 하하호호 열차 내 좋은 시간을 보냈거나 기분 나쁜 인종 차별을 겪었어도 
    이런 조용한 상황에 대해선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탔기 때문인지 객차네 사람은 반도 차지 않았고
    내 쪽(안쪽과 복도쪽까지 6자리)에선 나와 앞의 아저씨 단둘이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 차장님이 오시더니 열차표를 걷어갔다.
    내릴 때 돌려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고 침구 세트를 받았다.
    기차표로 침구세트를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막상 받아보니 뭐부터 해야 할까 막막해서 러시아 아저씨를 흘깃흘깃 쳐다보는데
    아저씨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따라 하란 듯이 내 앞에서 한 번씩 보여주며 셋팅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러시아에서 처음 만나자마자 웃는 사람들은
    미친놈이거나 바보로 볼 정도로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해지면 우리나라와 똑같이 웃으며 떠들지만 
    적어도 처음 만났을 때 웃는 건 러시아의 문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난 그것도 모르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인사로 해도 저렇게 무뚝뚝할까 고민을 했었다.


    기차 출발은 7시 10분이었고 자리 정리까지 마치니 7시 반이 넘어갔다.
    다들 약속한 듯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라면을 꺼내 놓고 온수통에서 물을 받아먹었다.
    첫날이라 온수통을 사용하는 것도 재밌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진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밥을 먹으며 러시아 아저씨와 아주 살짝 이야기(라기보다는 손짓 발짓)를 했는데
    그 덕에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다. 
    러시아 사람들은 보통 밥을 먹고 커피나 홍차를 마시는데 그때를 노려서 
    마트에서 산 간식을 권했다.
    러시아 아저씨는 거절했다. 
    우리나라는 누가 권하면 하나 정도 그냥 예의상 먹지만 여긴 거절도 자연스러워서 별로 상처가 되지 않았다.

    그러더니 너 차 마실래? (추측이다) 라고 물어봐서 끄덕였더니
    나를 차장님에게 데려갔다.
    그리고 차를 가리키더니 이거 하나 사라고 했다. 그래서 차를 샀는데, (추측이다.)
    아저씨가 차장에게 컵을 가르키더니 나한테 하나 빌려달라고 했다. (물론 추측이다.)
    마침 난 컵을 살까 말까 하던 와중이라 '나 빌리는 거 아니라 사고 싶어'라며 돈을 내밀었더니
    아저씨는 '컵을 왜 사! 빌려주는데! 사지마 사지마!'라고 했다. (물론 추측이며, 화낸 것 같았지만, 화를 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난 컵을 사고 싶었는데 사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앞으로 열차를 두번은 더 타고 비행기도 수 번을 타는데 너무 빨리 샀다면 내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기차에서 라면 먹고 커피까지 마시니 재밌는 기분이 들었다.
    상상만 하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서 자연스럽게 밥 먹고 쉬고 있는 상황이 말이다.
    차를 다 마시고 잠시 휴대폰을 보는데 다행히 아직까진 인터넷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기차가 정차했는데,
    블라디보스톡에서 당일 치기로 많이 가는 우수리스크였다.
    고려인 마을이 있어서 한국인들이 꽤 가는데 나도 가보려고 생각했던 곳이라 괜히 반가웠다.
    기차역이 작은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타진 않았다.

    그리고 또 반복되는 풍경, 사람들이 분주하게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타고 내리면 30분 정도는 기차 안이 정리되지 않은 소란스러움이 있었다.

    평소에 기본 새벽 2시는 넘겨서 자는 나인데 폐쇄된 열차라 그런지 피곤했다.
    그래서 씻을 준비를 해서 기차에 타고 처음으로 화장실로 갔는데....
    충격이었다. 제일 안 좋은 화장실 당첨이었다.
    화장실부터 수전까지 다 제일 안 좋은 쪽이었다.
    볼일 보고 저리 하는 것도 씻는 것도 힘들기 짝이 없었다.
    원래 여행이란 건 불편함을 감수하는 거지만 화장실만큼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난 이날 이후 결심을 하게 됐다.
    열차에서는 조금만 먹을래!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ㅠㅠ

    화장실의 충격인지 심신이 피로하여 잠이 쉽게 왔다.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지나갔다가도 계속 다시 돌아왔는데,
    생각보다 새벽에도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기 때문이다.
    열차의 밤은 이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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